1986년에 개봉된 스튜디오 지브리의 명작 중 하나인 '천공의 성 라퓨타(天空の城ラピュタ, Castle in the Sky)'는 단순한 모험 애니메이션을 넘어 깊은 철학적 메시지와 상징으로 가득 차 있는 작품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宮﨑 駿, Miyazaki Hayao) 감독의 세계관이 고스란히 담긴 이 영화는 인간 본성, 권력, 자연과의 조화를 철학적으로 분석하고 탐구하며 관객들에게 깊은 생각거리를 제공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스팀펑크(Steampunk) 장르 하나의 이정표가 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사람들에게 스팀펑크 하면 바로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밖에 없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스팀펑크 장르란, 1980년대 중반에 나타난 SF의 하위 장르인 사이버펑크에서 파생된 문학 장르입니다. 증기기관의 발달로 인한 산업 혁명이 진행되면서 근대 사회가 태동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주로 빅토리아 시대와 에드워드 시대의 영국 등 유럽을 배경 무대로 과학기술에 환상적인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과거의 재해석을 시도한 독특한 장르입니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이름으로 단 첫 장편영화인 이 작품은 아무래도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1997년에 개봉한 지브리 역사상 가장 철학적인 영화였던 '모노노케 히메(もののけ姫, Princess Mononoke)'와는 다르게 다소 오락적인 면이나 흥행적인 면을 염두에 두고 만든 작품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교훈은 상당히 깊고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지브리 영화 '천공의 성 라퓨타(天空の城ラピュタ, Castle in the Sky)'의 상징성, 자연과 인간의 조화, 이상향과 현실 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스포일러 경고: 이 글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과 결말에 대한 언급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으신다면 감상 후 읽어주세요!
1. 영화의 상징성
1) 권력과 타락의 상징, 라퓨타 성
영화의 세계관에는 오래전의 사람들은 모두 구름 위 하늘에 떠다니는 성이나 비행선에서 사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더 이상 문명 생활을 유지할 수 없게 되자 사람들이 지상으로 내려가거나 타락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때문에 영화에서 등장하는 라퓨타 성은 하늘에 떠 있는 고대 문명의 유산으로, 절대적인 권력과 그로 인한 타락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라퓨타 성은 본래 막강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이는 무분별한 권력의 남용이 결국 파멸을 불러온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 비행석의 의미
거대한 성 라퓨타가 하늘을 떠다닐 수 있는 이유는 중심부에는 강력한 에너지원인 작은 비행석 덕분입니다. 영화에서는 비행석을 목에 걸고 있는 한 소녀인 '시타'가 등장합니다. 근데 이 비행석을 노리는 정부와 해적단 '도라'가 그것을 얻으려고 시타를 노립니다. 그 때문에 시타는 도피하다가 어떤 비행선에서 추락하게 되지만 비행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비행석의 힘으로 천천히 떨어져 소년 '파타'에게로 다가오며 영화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제가 봤을 때 비행석의 의미는 과학 기술의 진보나 권력이 인류에게 가져다줄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과 동시에 위험한 파괴력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미야자키 감독은 영화를 통해 이미 1980년대에 기술과 권력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비판적으로 묘사하며, 절제되지 않은 욕망이 불러올 결과를 경고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어린이들에게는 단순히 재미있는 판타지물에 불과하겠지만 말입니다.
3) 인간과 자연과의 단절
라퓨타 성이 황폐해진 이유 중 또 다른 하나는 인간의 이기심과 자연과의 단절이라고 봅니다. 공중에 떠 있는 성이라는 설정 자체가 자연과 분리된 인간 문명을 나타내었으며, 이는 기술 문명이 가져오는 고립과 소외를 깊이 있게 표현하였습니다. 또한, 라퓨타 성의 정원은 오랜 세월 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자연의 법칙대로 자라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솔직히 영화로 들어가 거닐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정원이었습니다. 이는 자연의 자정 능력과 인간의 개입이 없는 순수한 생명력을 상징한다고 생각했습니다.
2. 자연과 인간의 조화
1) 로봇 병사의 역할
라퓨타 성에는 거대한 로봇 병사가 등장합니다. 이들은 본래 인간들에 의해 무력을 행하는 존재들로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인간들이 떠나자 자연스럽게 자연을 보호하는 존재가 되어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단지 폐허가 된 라퓨타 정원을 지키며 새와 꽃을 돌보는 로봇의 모습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여줍니다. 이러한 변화는 기술이 자연을 파괴하는 도구가 아닌 보호와 공존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동시에 현대 사회가 기술 발전과 생태계 보호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2) 로봇 병사의 감정
작중에서 표현된 로봇 병사는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로봇 병사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단순하고도 차가운 기계조차 자연의 아름다움 앞에서 감동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이는 생명과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상징하며, 동시에 관객에게 인간성과 자연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해줍니다. 자연 덕분에 로봇 병사는 무기가 아닌 도구로 거듭나며, 기술의 윤리적 사용과 생명 존중의 가치를, 영화를 통해 전파합니다.
3) 시대를 앞서간 가능성을 제시
미야자키 감독은 로봇 병사의 모습을 통해 기술이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시대를 앞서간 가능성을 제시하며, 환경 보호와 생명 윤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것도 스팀펑크 장르를 활용해서 말입니다. 현대 사회가 고민해야 할 기술 발전과 생태계 보전의 딜레마를 반영한 것입니다. 또한, 로봇이 지키는 정원은 라퓨타의 폐허 속에서도 자연의 생명력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며, 이는 자연의 회복력과 생명의 순환을 상징합니다. 이 장면을 통해 미야자키 하야오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이 가능함을 시사하였습니다.
3. 이상향과 현실
1) 이상과 현실의 묘사
라퓨타 성은 하늘에 떠 있는 이상향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파즈와 시타가 마주한 라퓨타는 황폐해진 성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이는 이상적인 유토피아가 현실에서는 존재하기 어렵다는 인간의 근원적인 심성을 묘사한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았다고 봅니다. 인간은 라퓨타를 활용하여 기술과 권력의 극대화를 통해 완벽한 세상을 만들려고 했지만,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으로 인해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2) 불완전함 속에서의 조화
라퓨타 성의 붕괴는 권력과 이익을 통해 완벽한 이상향을 추구하는 인간의 집착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현대 사회가 완벽한 풍요와 쾌락,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성찰하게 합니다. 미야자키 감독은 이를 통해 현실 속에서 행복을 받아들이는 철학을 반영하며, 인간의 완벽함을 추구하기보다는 불완전함 속에서 조화를 지향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는 그가 영화 전반에 걸쳐 전달하고자 하는 삶에 대한 긍정적인 메시지와 연결되었습니다.
3) 물질적인 권력의 허무함과 영적인 가치
라퓨타 성을 통해 다시 권력을 지배하고자 등장한 적인 '무스카'는 비행석을 빼앗고, 절대 권력을 통해 세상을 통제하려 하지만, 결국 그 욕망이 그를 파멸로 이끌게 됩니다. 이는 권력에 대한 집착이 인간 본성의 타락으로 이어짐을 경고하며, 절대적인 힘은 반드시 덧없고, 부패하게 된다는 교훈을 자연스럽게 남기게 됩니다. 미야자키 감독은 이를 통해 진정한 힘은 파괴가 아니라 보호와 조화에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라퓨타가 결국 파괴되고 비행석만 덜렁 남는 장면은 물질적 권력의 허무함과 영적인 가치를 자연스럽게 상징하게 됩니다. 이는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보여주며, 물질적 가치는 썩어 없어지지만, 정신적인 가치와 성장만이 남아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결론
영화 '천공의 성 라퓨타(天空の城ラピュタ, Castle in the Sky)'는 단순한 모험 이야기를 넘어 신선한 스팀펑크 장르를 활용하여 깊은 철학적 성찰을 유도한 작품이었습니다. 권력과 타락, 자연과 인간의 조화, 이상향과 현실의 대립 등 다층적인 상징과 메시지를 통해 관객에게 인간 본성과 삶의 가치에 대해 자연스럽게 고민하게 만듭니다. 미야자키 감독은 1980년대 중반의 시대를 앞서간 현대 사회의 문제점과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며, 인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덕분에 이 작품은 그 자체로 철학적인 메시지라고 할 수 있으며,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보편적 가치를 담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