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14일,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宮﨑 駿, Miyazaki Hayao)가 전작 '바람이 분다(風立ちぬ, The Wind Rises) 이후 10년 만에 선보인 스튜디오 지브리의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君たちはどう生きるか, The Boy and the Heron)가 개봉하면서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 애니메이션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습니다. 많은 주목과 찬사속에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제 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당당히 수상하며 미야자키 감독의 저력을 다시 한 번 전 세계에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지브리 최고 흥행작인 2002년에 개봉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千と千尋の神隠し, Spirited Away)가 200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을 수상한 이후 2번째 작품인 점에서 기념비적인 성과를 거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로튼 토마토에서도 신선도가 무려 97%를 기록했습니다. 관객 점수도 88%에 달하는 만큼 상당히 높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후 정말 역사를 새로 쓴 또다른 명작이 탄생했구나 하는 짐작을 가지게 만듭니다.
분명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만큼의 명작이 탄생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다소 차이가 나는 것이 있습니다.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내용이 하도 난해해서 도대체 감독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를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특히 본국인 일본을 비롯하여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서 유독 혹평이 많은 편인것 같습니다. 반면 서양 쪽에서는 비판하는 사람들보다는 오히려 이 작품을 극찬하고 대흥행하는 모양세입니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프로듀서인 스즈키 토시오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미야자키 감독이 그럴 의도로 만든 것은 아닐테지만, 이 작품은 흡사 구약성경 같다. 그래서 서양에서 유독 이 작품을 좋아하는 것 같다'라는 인상깊은 견해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것인가'에 대한 제 생각은, 이 작품은 비록 장르는 다르지만 마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유사한 작품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토리의 난해함과 비선형적인 서사, 철학적인 메세지, 결말이나 해석을 전적으로 관람객에게 맡긴다는 점에서 더욱 그런것 같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지브리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君たちはどう生きるか, The Boy and the Heron)'의 미야자키 감독의 연출 방식과 철학적인 분석, 영화가 전달하는 메세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스포일러 경고: 이 글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과 결말에 대한 언급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으신다면 감상 후 읽어주세요!
1. 지브리 스타일의 정점, 미야자키 하야오의 연출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스튜디오 지브리 특유의 항상 감성적이고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은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온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번 작품 역시 여전히 그의 독창적인 연출 스타일이 돋보입니다. 특히 현실과 판타지의 하위 장르인 이세계(Isekai, 異世界)가 자연스럽게 뒤섞이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극대화시킨 것이 이번 작품의 연출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 비주얼과 작화의 진화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는 지브리 특유의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기술을 적극 활용하여 더욱 생동감 넘치는 비주얼을 선보였습니다. 배경미술은 여전히 지브리의 오랜 방식 그대로 그림 한장 한장이 마치 황홀한 예술작품처럼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려졌으며, 빛과 색채의 활용이 전작보다 한층 더욱 깊어진 느낌이 듭니다. 미야자키 감독 특유의 대사보다 시각적인 연출이나 캐릭터의 행동, 표정, 분위기 등을 통해서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이 곳곳에 꼼꼼하게 배치되어 있어 보는 내내 기가 막힐 정도입니다.
2) 스토리 전개의 특징
언뜻 보면 일본 판타지의 한 종류인 이세계로 떠나는 마히토라는 한 소년과 왜가리의 흔한 모험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세계로 떠나면서 주인공인 한 소년이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영화의 스토리는 한 편의 동화처럼 아름답고 색감이 풍성하지만, 동시에 인간 존재의 의미를 묻는 철학적인 깊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이러한 부분 때문에 제가 마치 이 영화를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유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과거 미야자키 감독이 작업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바람이 분다'와 유사하게 꿈과 같은 몽환적이고 동화적인 요소 속에 현실적인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방식이 특징입니다.
2. 철학적인 분석
1)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가는 실존적 관점
솔직히 이 영화, 정말 어렵습니다. 미야자키 감독이 구체적으로 영화를 통해 하나하나 세밀하게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또 이 영화를 통해 어떤 철학적인 면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한 점을 토대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마히토는 인생과 상황 속에서 중요한 선택들 앞에 놓이게 됩니다.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야 하고, 현실과 이세계라는 환상을 넘나들며 성장해 나가게 됩니다. 이러한 영화의 구성은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수많은 경험과 노력, 성공과 실패, 교훈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가는 존재라는 실존적 관점과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2) 실존주의 철학의 개념
영화를 보는 내내 한 철학자의 사상이 떠올랐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덴마크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 1813-1855)'는 실존주의의 선구자로, 개인이 신념과 선택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형성해 나간다고 본 철학자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의 철학과 주장이 자연스럽게 생각났습니다. 그는 인간이 삶에서 필연적으로 맞닥뜨리는 경험들과 불안, 선택의 문제를 강조하며, 진정한 자아는 그 속에서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한 삶 속에서만 완성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 마히토 역시 현실과 이세계라는 환상, 두 세계를 넘나들면서 중요한 모험들과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됩니다. 2차 세계대전 속에서 어머니를 잃은 경험과 시대적, 환경적인 배경들을 통해, 그는 다른 누군가가 정해준 길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판단을 통해 성장하고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는 키르케고르가 말한 진정한 삶은 자신이 선택한 길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개념과 닮아 있는 듯합니다.
3) 불안과 성장의 과정
키르케고르는 인간이 중대한 선택을 앞두고 불안(Angest)을 경험한다고 말했습니다. 여러 환경의 변화와 이별, 혼란 등으로 인해 과묵해진 주인공 마히토가 모험 속에서 경험하는 혼란이나 두려움, 혹은 고민들은 바로 이러한 실존적 불안의 표현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마히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불안을 피하지 않고 용감하게 직면하며, 결국 더 성숙한 소년으로 거듭나게 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3.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전하는 메시지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비록 다소 난해하게 관객들에게 다가오더라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는 늘 일관적으로 깊은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이번 작품에도 역시 '삶의 의미'와 같은 깊고도 철학적인 주제를 담은 것 같습니다.
1) 성장과 자기 발견
마히토는 모험을 통해 스스로를 이해하고, 고통을 극복하는 법을 배우는 것 같습니다. 이는 모든 모험이나 성장 이야기의 핵심적인 요소들이며, 관객들도 마히토의 여정을 따라가며 다소나마 공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종종 모험이나 환경의 변화와 같이 어려움이나 낯섦, 혹은 실패를 통해 성장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독특함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2) 죽음과 삶의 순환
영화는 마히토의 어머니의 죽음을 배경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과정에서 '삶은 계속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습니다. 이는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미야자키 감독의 일관된 작품의 세계관과도 맞닿아 있는 듯 합니다. 한 사람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되고, 자연이나 인간의 삶은 끊임없이 순환한다는 철학적인 개념을 담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3) 판타지와 현실의 조화
영화 속에서 현실적인 슬픔이나 고통을 이세계에서 겪는 일들를 통해 극복하는 방식은 미야자키 감독의 꾸준한 방식 중 하나입니다. 미야자키 감독은 판타지를 통해 현실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마히토가 판타지와 같은 환상적인 세계에서 겪는 경험이나 만남들은 단순한 모험극의 내용이 아니라, 현실에서 그가 감당하고 마주해야 할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과도 맞닿아 있는 듯 합니다.
이처럼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한 편의 성장 서사로서 분명 난해한 요소들이 많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삶의 본질이나 방향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하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결론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정말이지 단순한 애니메이션 영화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작품을 만들어온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철학과 생각이 집대성된 작품이며, 스튜디오 지브리가 애니메이션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집약한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시각적인 아름다움이나 서정적인 스토리 방식, 그리고 깊이 있는 철학적인 메시지 등 모든 요소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며, 관객들에게 긴 여운을 남깁니다. 만약 지브리 작품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이라면, 난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반드시 봐야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이와 같은 난해한 작품을 또 다시 만들어도 좋으니 이 작품이 부디 그의 마지막 작품이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