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미학과 고전적인 감성, 그리고 인상깊은 색감으로 유명한 웨스 엔더슨(Wes Anderson) 영화감독이 2012년에 연출하여 개봉한 장편 영화 '문라이즈 킹덤(Moonrise Kingdom)'은 독특한 연출과 감성적인 스토리로 많은 팬들에게 사랑을 받은 작품입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칸 영화제의 첫 출품작이며, 이러한 사랑과 관심, 그리고 평단의 극찬은 2년 뒤인 2014년에 개봉한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The Grand Budapest Hotel)'로 이어지게 됩니다. 웨스 엔더슨 감독의 작품 중 인지도 면에서는 확실히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가장 앞서는 것 같습니다만, 이번 글에서 소개할 영화 '문라이즈 킹덤' 역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만큼이나 굉장히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1960년대 미국 뉴잉글랜드에 있는 가상의 섬인 뉴 페잔스 섬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두 소년 소녀의 순수한 사랑과 자유를 향한 여정을 그리며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시대를 타지 않고도 귀여운 사랑과 감동을 관객에게 전달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영화 '문라이즈 킹덤'의 해석과 연출, 배경, 감성 등을 알아보겠습니다.
스포일러 경고: 이 글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과 결말에 대한 언급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으신다면 감상 후 읽어주세요!
1. 영화의 해석과 웨스 앤더슨 감독의 연출 스타일
영화 문라이즈 킹덤은 확실히 성장적인 요소가 담긴 스토리입니다만, 단순한 성장 영화라고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그렇게 감동적이거나 교훈적인 내용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이 영화 속에는 웨스 앤더슨 감독 특유의 미학이나 색감, 다양한 상징 등 감독의 독특한 연출 기법이 고스란히 녹아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러한 감독의 독특한 연출 스타일에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특히 색감을 정말 잘 사용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이 영화가 더욱 주목을 받은 것 같습니다.
1) 자유를 향한 갈망
먼저 영화 속 주인공 소년인 샘과 소녀인 수지는 먼저 자신들을 억압하거나 통제하는 현실 속에서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특히 샘은 고아로 인해 위탁가정을 전전하고 또래 친구들 역시 아무도 그를 인정하거나 지지하는 아이들이 없었기에 깊은 외로움을 느낀 그는 자신을 지지해 주는 사람과 함께 보다 안정된 삶을 원합니다. 샘만큼의 상황이나 외로움까지는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수지 역시 자신을 이해하거나 지지해 주지 않는 부모와 답답한 가정에서 벗어나기를 바랐습니다. 때문에 이 아이들의 도피 행각은 단순한 사춘기의 반항심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해 나가려는 첫걸음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2) 어른들과 주변인들의 점진적인 변화
영화 속 어른들이나 주변인들은 처음에는 아이들을 주로 통제하거나 억압하고 다소 못마땅하게 여기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어른들뿐만이 아니라 아이들과 같은 또래 주변 아이들 역시 주인공인 샘과 수지를 괴짜 취급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실종 사건으로 섬이 뒤숭숭해지자, 아주 점진적으로 변화를 겪게 됩니다. 먼저 경찰서장인 샤프는 샘의 상황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돕게 되며, 주변 스카우트 아이들도 샘에게 행한 짓들에 대해 반성하고 그를 돕기로 결심합니다. 수지의 부모 역시 자신들의 문제를 아주 점진적으로나마 깨닫게 됩니다. 이는 성장의 의미가 단순히 주인공인 두 아이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하는 것 같습니다.
3) 웨스 앤더슨 감독의 스타일
어쩌면 스토리만큼이나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글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하고 싶은 요소이기도 합니다. 1990년대 등장한 웨스 앤더슨 감독 특유의 대칭적인 화면 구성이나 고전적인 공간이나 풍경, 파스텔 색조의 색감은 이 영화에서도 빛을 발합니다. 문라이즈 킹덤의 경우에는 영화의 배경이 된 1960년대 미국의 복고풍 감성을 극대화하며, 따뜻하면서도 마치 동화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노력한 것 같습니다. 이는 어린 두 주인공의 순수하고도 귀여운 사랑과 잘 융합되어 관객들에게 독특한 감성을 전달하는 것 같습니다.
4) 색감과 미장센
먼저, 1965년 뉴잉글랜드 배경을 충실히 재현하기 위해 고풍스러운 의상이나 가구, 지도, 서류 등이 세심하게 배치된 것을 보고 개인적으로 실내 건축을 전공했던 제가 느끼기에는 디자이너들이 색채나 배치 등의 영감을 받기 위해 참고할 만한 영화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이는 감독의 또 다른 명작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역시 마찬가지로 굳이 제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촬영도 정말 부드럽고 일정한 속도의 트래킹 샷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영화 속에서 캠프 인디언 서머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좌우로 서서히 이동하며 구조적인 구성을 강조하며 보여줍니다.
5) 1960년대 감성
렌즈 및 화면 비율 역시 정말 감독이 1960년대 감성을 많이 담기 위해 Super 16mm 필름을 사용하는 등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 필름으로 촬영하여 복고풍인 감성을 극대화한 것이 보입니다. 1.85:1 화면 비율을 사용한 것도 현대적인 영화에서 주로 사용하는 와이드스크린보다 좁으므로 정말 관객에게 1960년대 분위기를 온전히 제공하는 느낌을 줍니다. 영화 중간중간에 삽입된 벤저민 브리튼(Benjamin Britten)의 클래식 음악을 활용한 것도, 이야기의 동화 같은 분위기를 강조하는 중요한 도구가 되어 주었고, 알렉상드르 데스플라(Alexandre Desplat)의 오리지널 스코어 역시 모험적이고 유쾌하며 율동적인 음악이 영화의 분위기를 채워주는 것만 같습니다.
6) 독특한 미장센과 연출기법
폭풍우 장면이나 등대 장면에서도 실제 구조물을 촬영한 것이 아니라 미니어처와 아날로그 기법을 사용해 감독의 예술적인 스타일을 유지하였고, 중간중간 등장하는 몇몇 장면에도 실사 촬영이 아닌 아날로그 느낌의 페이퍼 컷아웃 애니메이션이 삽입되는 등, 감독만의 독특한 미장센과 연출 기법을 엿볼 수가 있었습니다.
2. 영화의 공간 배경
1) 영화적으로 활용된 배경
영화의 주요 배경은 미국 동부 뉴잉글랜드 지역의 가상의 섬입니다. 영화 속에서는 뉴 페잔스 섬(New Penzance Island)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데, 실제 촬영지는 미국 로드아일랜드에 위치한 프루덴스 섬(Prudence Island)과 너너가셋 섬(Nunnagansett Island) 등에서 이뤄졌습니다. 이 지역들의 특징은 미국 동부 특유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클래식한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며, 1960년대 중반의 클래식한 분위기를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는 장소로 보아 영화적으로 활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2) 영화 속 배경이 되는 요소들이 가진 의미
주인공들이 지내고 있는 뉴 페잔스 섬은 바다로 둘러싸인 외딴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이자 고립된 환경입니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의 질서와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들만의 왕국을 구축하려 합니다. 하지만 섬이라는 환경 자체가 가지는 물리적인 한계 역시 존재하기 때문에, 결국 이들은 쉽게 위기를 맞습니다. 또한 영화에서 간간히 보이는 아름다운 등대는 자유와 소통의 상징으로 보입니다. 영화 속에서 수지는 등대를 바라보며 책을 읽고, 먼 곳을 동경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등대는 수지에게 현실과 이상을 연결하는 장소이며, 바다 저편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샘이 소속된 스카우트 캠프는 소년들에게 철저한 규칙과 군대식 질서를 강요합니다. 반면에 샘과 수지가 도망친 해변에 설치된 샘의 스카우트 캠핑 도구로 만든 캠프는 무질서하지만 자유로운 공간입니다. 이 대비를 통해 영화는 어른들의 세계와 어린이들의 세계를 공간적으로도 표현했다고 봅니다.
3) 영화 속 공간별 주요 장면 분석
문라이즈 킹덤의 공간들은 이야기의 진행과 주인공들의 감정의 변화에 따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숲속 트레킹 장면에서 보면 샘과 수지는 숲속을 탐험하며 자신들만의 길을 개척해 나갑니다. 숲 속의 울창한 자연은 이들에게 보호막이자 도전의 대상이며, 이는 어린아이들이 세상을 이해해 나가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나타내었습니다. 또한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섬에 폭풍우가 몰아칩니다. 이런 절정의 장면은 단순한 급격한 날씨 변화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 주인공들의 위기를 상징하는 직관적인 요소로 사용되었습니다. 폭풍우는 이들이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는 운명을 암시하며, 아이들의 왕국의 끝을 의미하는 것 같이 묘사되었습니다.
3. 영화의 시대를 초월한 감성
이 영화는 1965년의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의 섬을 배경으로 다루는 이야기입니다만, 특정 시대나 문화에 매몰되어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영화가 다루는 주제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게 다가옵니다. 영화가 제공하는 시대를 초월한 감성이 감독 특유의 미학과 어우러지며 더욱 깊이 다가오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1) 순수함의 비범함
샘과 수지의 관계는 성숙하지 않지만, 시대 특성상 SNS가 아닌 손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신뢰감을 쌓는 것을 보면 정말 솔직하고 순수하고도 풋풋한 관계처럼 보입니다. 서로에게 의지하여 자신들을 억압하고 힘들게 하는 사람들로부터 도망칠 용기를 내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로미오와 줄리엣'의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어 줍니다. 실제로 앤더슨 감독은 샘과 수지 역을 맡은 두 아역배우에게 촬영 전에 미리 손 편지를 주고받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섬세한 요소들이 더욱 이 영화를 비범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2) 감독이 전하는 따뜻한 메시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는 나름의 결핍과 부족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샘은 가족이 없고 공상에 빠지며 주위로부터 인정이나 지지를 받지 못해서 외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수지는 부모와의 소통이나 친구 관계 역시 단절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부족한 서로서로 만나 위안을 얻고 행복을 얻으며 점차 성장해 나갑니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관계와 연대가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동시에 아무리 자신이 부족한 사람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나 위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 주는 것 같습니다.
3) 유효하게 작용될 따뜻함
이렇듯 웨스 앤더슨의 영화는 언제나 독특한 분위기와 색감, 미장센과 고전적인 감성으로 사랑받는 것 같습니다. '문라이즈 킹덤' 역시 어른이 되면서 잊어버린 순수한 감정들이나 세상의 틀을 깨고 나아가는 용기에 관해 이야기함으로써 시대가 지나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유효하게 작용할 따뜻함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감독의 세심한 연출 기법은 배가 됩니다.
결론
'문라이즈 킹덤'은 주인공들의 특성상 청소년들의 성장이나 로맨스 영화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단순한 성장 영화나 로맨스물도 아니고, 196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시대극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단순한 시대극도 아닙니다. 사랑과 자유, 순수함, 그리고 어른과 아이의 성장 이야기가 섬세하게 어우러져 녹아있습니다. 거기에 웨스 앤더슨 감독의 독특한 연출 기법과 황홀한 색감, 그리고 감성적인 스토리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애틋함과 즐거움을 주는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누구나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보게 되는 이 영화는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더라도 이상하지 않고, 때로는 진중하게 접근해도 나름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훌륭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